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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theBlue 2013. 6. 9. 18:10

코스피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경제 활황과 투자자들의 기대를 높이던 2011년 봄, 나는 장기 불황의 당위성을 재차 역설하며 P사이트에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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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 개막 전야, 미국 재무장관 가이트너는 작금의 대불황을 야기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단하면서 판에 박힌 견해를 또다시 피력했다.

“너무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너무 많이 구매하고 너무 적게 저축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어다에서도 더 이상 이러한 관행은 통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인들은 덜 소비하고 중국인들은 더 소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경제체계에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과소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이전보다 거대해진 경제 시스템이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마땅한 생활수준을, 대다수 국민들의 수입으로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국가 경제는 활발하게 성장했고 중산층은 당연히 그 성장의 보상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보상의 상당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이 상류층에게만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뿐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지속 가능한 회복세를 누릴 수 있다. (...) 경제 성장의 혜택이 폭넓게 공유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경제 체제는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대불황은 끝났다. 그러나 애프터쇼크(After Shock), 즉 충격의 여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

근원적 문제가 부상한 것은 미국 중산층이 글로벌 경쟁과 노동 대체 기술로 인해 이중고를 겪기 시작한 1980년경이었다. (...) 중산층이 번성할 수 있는 일련의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는 대신, 정치가들은 전지전능한 자유시장에 대한 우세한 신념을 바탕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수용했고, 노조를 탄압하여 축소시켰으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었고, 사회안전망을 분쇄했다. 이로 인해 미국인 대부분의 임금은 침체되었고, 일자리는 더욱 불안해졌으며, 소득 불균형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경제 성장의 혜택이 갈수록 더 작은 그룹에 돌아가 축적된 것이다.

19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가 가져가는 비율은 9퍼센트에 못 미쳤다. 그러나 이후 소득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어 2007년엔 그 비율이 23.5퍼센트에 달했다. 소득이 이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마지막 시기가 1928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은 당연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오직 돈을 빌림으로써만, 그리고 점점 더 빚의 늪으로 빠져듦으로써만 충족시킬 수 있다. 이에 따른 그들의 소비는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또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비록 당분간이지만. 

이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 충분한 구매력이 부족한 중산층은 결코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없다. 빌리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써는 이런 상황을 일시적 재정위기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쉽다. 과도한 부채 수준에 원인을 돌리고 금융기관들이 지불능력을 유지하고 인출사태를 피하도록 충분한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하려 애쓰는 것이 그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재선 성공이다. 그래서 그들은 돈이 많은 이익집단을 과하게 방해하지 않는 단기 처방을 선호한다. 그 동안 선거 비용이 꾸준히 상승한 탓에 그런 이익집단에 대한 정치인들의 의존성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자들 또한 나름으로 자신들의 과도한 부가 자신들의 비범한 재능 및 극히 중요한 역할의 필연적 결과라는 옹호론을 펼친다. (...)

의료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법률 제정 외에는 대불황의 핵심에 놓인 문제, 즉 소득 불균형 및 그에 수반하는 불안정을 해소하는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돈 많은 이익집단들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경제체제가 다시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며 불황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한편, 주요 변화에 반대하는 집중적 로비에 들어갔다. 많은 정치인들 역시 다가오는 선거만 생각하면서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천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단기적으로 보면, 과도하게 낙관적인 경제 예측은 재임 중인 정치인들과 투자은행가들에게 고수익을 안겨준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 즉 우리가 장기적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

결국 장기적으로 경제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장기간 저조한 경제 성장) 상태에 들어 갈 것이다. 이로 인한 높은 수준의 실업률(‘회복’이 시작되었다는데도 계속 높운 수준이지 않은가)과 낮은 수준의 임금은 변화에 대한 요구를 낳을 것이다. 

- 로버트 라이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 SHOCK)’ -
(※ 올 봄에 타임라인에 올린, 불편한 진실을 담은 포스트들 태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상기 로버트 라이시의 <AFTER SHOCK> 인용부 역시 사라진 포스트에서 이미 다루었던 내용이지만 사라진 포스트들을 복원하는 의미에서 재차 인용했습니다.)

이상의 글에서 명백히 예시하는 바와 같이, 탐욕스럽고 문란한 금융 자본에 의해 부풀려지고 돈의 힘으로 버텨온 현재의 경제 버블은 늦어도 2015년 안에 붕괴가 시작되고, 이후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야 할 것이다. 어쩌면 10년 이상 가는 불황이 될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그 만큼 긴 치유 기간이 필요하다. 그 만큼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 아래 키워온 탐욕의 거품 비만은 크고 위중하다.

다음은 작년 여름 조선위클리비즈에 실린, 장기불황의 필연성을 확인시켜주는 두 편의 글이다. (이 글들이 제시하는 경제 현실과 진실 속에서 장기불황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지혜를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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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는 IT(정보기술) 발달과 세계화라는 양대(兩大) 동력에 힘입어 최근 20여년 동안 급팽창했다. 1991년 23조달러이던 글로벌 총생산(global output) 규모는 매년 평균 3% 넘게 증가해 지난해 70조달러(약 8경원)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국제통화기금·IMF 집계). 최근 20년간 세계 경제 성장 규모가 직전 100년 동안을 능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세계 경제의 장기 고성장은 중국·인도 같은 신흥국의 성장 드라이브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 등이 저렴한 노동력으로 값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 세계 각국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완화됐고, 이것이 세계적인 저(低)금리 기조로 이어져 기업은 투자를, 가계는 소비를 각각 늘려 경제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무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2008년부터 깨져 신기루임이 확인됐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만 해도 일시 침체에 그칠 것이라며 희망적 관측이 많았지만, 남유럽 재정 위기가 유로존 위기로 확산되고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들면서 이제는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이 득세하는 형국이다.

물론 "세계 경제에 낙관론이 되돌아왔다"며 올해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를 3.3%에서 3.5%로 올 4월 상향 조정한 IMF처럼 낙관적 전망이 종적을 완전히 감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같은 위기 국면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기업인 미국 모니터(Monitor)그룹의 스티븐 제닝스(Stephen Jennings·51) 최고경영자(CEO)의 대답은 이렇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장기 저성장(低成長)이 전 세계를 짓누를 것입니다."

국가 발전과 기업 성장 전략 분야의 전문가인 그가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간명하다. 2008년 이후 재정 수단을 동원한 각국의 대대적인 경기 부양 노력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가 지역별로 확연한 연쇄 둔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지난 1년 동안 성장이 멈췄고 미국은 올 2분기에 성장이 정지됐습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중국·인도·브라질의 성장세도 점차 둔화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춘다면 전 세계가 일본식(式)의 '잃어버린 10년'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
그는 "앞으로 글로벌 저성장 흐름이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세계적으로는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일자리 창출이 모든 나라의 핵심 어젠다(의제)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창출하라’고 국가나 기업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
제닝스 CEO는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편이지만 세계 경제가 언제쯤 회복될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 모두 저(低)성장이 지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 고위 관료나 기업 임원에게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시기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현재의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세계 경제는 지난 25년 동안 엄청난 부채를 쌓아 올렸고, 이제는 부채 축소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부채 축소는 성장 달성이나 채무 재조정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현재로선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고 연쇄적 채무 재조정 협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위기가 여러 나라로 번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프랑스나 영국도 남유럽국에 이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유로존 각국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칠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하다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롤러코스터 현상이 당분간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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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30년 이상 간다"… 빚 갚는 일만 남아 

"최근 30년 동안 세계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은 '폰지 사기(Ponzi Scheme·일종의 다단계 금융 사기)'이다. 부채를 이용해 외형상 고(高)성장을 이뤘을 뿐이다. 2008년 미국은 평균 4~5달러의 빚을 내서 1달러 정도 성장했다. 중국은 미국에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팔았지만 미국은 그만큼 돈을 벌거나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이런 대담한 발상을 내놓은 주인공은 금융 리스크(risk)와 파생상품 분야의 권위자로 세계 최고의 리스크 컨설턴트로 꼽히는 사트야지트 다스(Satyajit Das·55)이다. 그는 "지금 세계 경제가 직면한 저(低)성장과 고실업이란 쌍둥이 쓰나미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아니라 '그냥 노멀'(the normal·정상)일 뿐"이라며 "이제 남은 것은 빚쟁이들이 저축을 해서 빚을 갚는 일과 고성장이란 환상에서 깨어나 저성장 또는 무(無)성장이라는 현실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의 문제와 비리를 신랄하게 꼬집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JP모간·도이치뱅크·HSBC·RBS 같은 세계적 금융기업들이 리스크 경영과 관련해 상담을 가장 많이 의뢰하는 초일류 컨설턴트이다. 비정상적인 거품 고성장 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그의 핵심 논거는 뭘까. 

◇'지렛대'로 부풀려진 '30년 高성장 시대' 

먼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소비'는 '미덕'이었고 '부채'는 '자산'이었다. 돈을 많이 지출할수록 기업이 살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동안 빚은 자산 증식을 위한 지렛대(leverage·레버리지)로 인식됐다. 대출 금리보다 투자 수익률이 더 높았으므로 레버리지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돈을 벌었고 저축만 한 사람은 손해였다. 

하지만 실질 성장은 거의 없이 부채만 늘리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문제가 곪아 터졌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도 돈을 빌렸고 소득이 있는 사람도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빌린 탓이다. 

기업들도 제조·생산보다는 금융 투자 수익에 몰두했다. 재화·서비스를 생산·유통하는 '진짜 경제'는 '구(舊)경제'로 내몰리고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이용해 모든 것을 거래(트레이딩)해 차익을 남기는 금융기법이 '신(新)경제'로 각광받았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 수익 극대화는 필수품이었다. 

실제 에너지 개발 기업인 엔론(Enron)은 각종 특허·영업권과 에너지 자원을 기초자산으로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거래하는 '트레이딩'사업을 확대하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관련 회계 장부를 조작하다 2001년 파산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GM은 할부금융업(캐피탈)을 늘리면서 2000년대에 수익의 절반 이상을 금융업에서 얻는 금융회사로 변신했지만 단기 수익에 급급해 각종 파생상품에 손대다가 2009년 막대한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 거래와 투기가 기업의 주업(主業)이 되고 금융이 산업을 대체한 셈이다. 

◇'솜사탕' 같은 헛돈을 만든 금융 

이런 비정상적인 거품 성장을 조장하고 방치한 주범(主犯)으로 그는 '금융'을 지목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는 금융사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도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도록 부추기면서 촉발됐다. 금융사들은 "내게 레버리지를 주면 모든 돈을 취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금융사들은 부실 위험이 급팽창하자 CDO(부채담보증권)나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폭탄 돌리기를 하듯 위험을 다른 회사에 팔아넘겼다. 2006년에는 레버리지로 부풀려진 파생상품이 전 세계 유동성의 80%를 차지했다. "솜사탕처럼 부풀어올랐던 돈은 부실이 터지자 끈적거리는 덩어리로 쪼그라들며 세계 경제를 얽매고 있다."

사트야지트 다스가 보는 세계 경제 위기의 본질과 향후 펼쳐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음울한 전망을 깨기 위해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면 세계 경제가 살아나지 않을까’라고 묻자, 그는 “‘보톡스’ 경제는 더 이상 해법이 안 된다”고 했다. “유동성은 주름을 숨겨주는 보톡스처럼, 문제를 은폐할 뿐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는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진통제만 계속 쓴다고 해결이 되겠느냐”며 “할인 판매하는 치료약을 찾아보겠다는 꿈은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해법은? 그는 “정공법(正攻法)으로 치료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낭비의 삶’에서 ‘검약의 삶’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수익에 급급한 금융이 위기 초래, 저축해 빚 갚는 일만 남았다” 

―원점에서 다시 묻겠다.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 원인은 무엇인가? 

“금융이 너무 많은 유동성을 만들어낸 게 주범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처럼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초저금리로 대출이 됐고, 금융 파생상품들은 높은 레버리지(빚)를 일으켰다. 1달러만 있으면 20~30달러를 빌릴 수 있었고, 자산가치가 조금만 하락해도 파산자가 속출하게 됐다. 금융상품이 복잡해져 은행과 투자자들이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얽히고설켰고, 규제당국조차 이런 연결고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금융 부실은 재정 부실로 이어졌다.” 

―금융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벌였을까? 

“단기 수익에만 급급하는 미친(crazy) 보너스 제도 때문이다. 직원들이 단기 실적만 잘 올리면 엄청난 급여를 받으니 위험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는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주주 자본주의가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금융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 않나. 

“지난 30여년간 우리가 이룬 성장과 부(富)는 빌린 돈과 투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건 우리가 인정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dirty secret)이다. 1980년대 이후 성장을 견인한 핵심요소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부채, 즉 ‘경제의 금융화’였다. 중국·일본·독일 같은 수출국들은 미국 같은 소비국에 돈을 빌려줌으로써 수요를 창출했다.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판 셈이다. 2001~2008년 미국의 기록적인 경제 성장의 절반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무분별하게 공급한 대출이 기여했다.” 

―그렇다면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는가. 

“디플레이션은 대출로 일으킨 성장의 후유증이다. 이 위기는 성장이나 인플레이션이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부도를 피하는 방법은 그뿐이다. 그동안은 경제 성장이 문제를 해결했다. 성장은 빈곤층을 줄였고, 개인·기업·국가가 진 빚을 갚아줬다. 그러나 역사적인 고성장 시대는 끝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성장은 인구 증가에 따른 새로운 시장 창출, 산업 혁명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구가 늘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지 않다. 또다시 대출을 늘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공공, 금융, 개인이 동시에 빚을 줄일 것을 강요받고 있다.” 

―더 이상 성장은 진짜 불가능한가?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을 통한 성장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산업 혁명이나 컴퓨터 혁명 같은 대규모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웃소싱이나 인력 감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한계가 있고 모순도 있다. 회사가 많은 이익을 얻는 동안 근로자 소득은 오르지 않았고 소비여력이 떨어졌다. 이는 소비가 경제활동의 60~70%를 차지하는 선진국에서 성장을 제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해결책은 뭔가? 

“저축을 많이 해 빚을 줄여야 한다. 지난(至難)하고 고된 일이다. 물론 부도를 내고 일부 빚을 탕감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산가치는 급락할 것이다. 어떻게 되든 우리는 장기간 저성장과 디레버리징(빚 갚기) 사이클의 덫에 걸릴 것이다.” 

―위기는 얼마나 오래갈 것으로 보나? 

“3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일본을 봐라. 1989년 버블 붕괴 후 20년 넘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임의 도구로 전락한 ‘돈’ 

―최근 저서인 ‘익스트림 머니(Extreme money)’에서 돈이 본래의 목적을 잃었다고 말했다. ‘익스트림 머니’는 무엇인가? 

“돈은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고, 그 가치를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런데 돈이 돈을 낳는 투기에 동원되고 있다.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재화나 용역은 물론 각종 권리까지 모든 거래 가능한 것이 매매되고 있다.” 

―금융이 부(富)의 양극화를 부채질했다고 보나? 

“금융은 원래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빚은 부의 불평등을 숨기기 위한 도구였다. 신용 사회가 되면서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저소득층도 빚을 지면서 더 많이 쓸 수 있게 됐다. 금융인들은 지나치게 많이 빌려줬다. 지나친 부채는 저소득층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금융의 기능은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나? 

“폴 볼커 전 미국 FRB 의장이 ‘우리에게 유일한 금융 혁신은 ATM(자동현금인출기)뿐이었다’고 한 말에 나는 동의한다. 은행과 금융기관은 안전한 지불 시스템을 제공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 돈을 맡기는 자와 빌리는 자를 적절히 연결시켜주고, 복잡하지 않은 리스크 관리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그 이상으로 너무 나가면 안 된다.” 

―파생상품은 위험을 헤지(hedge)하는 도구다. 무작정 거래를 금지할 수 없지 않나? 

“맞다. 그런데 현재 파생상품의 90%는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킨 투기에 사용되고 있다. 시장은 이미 너무 커졌다. BIS(국제결제은행) 조사에 의하면 글로벌 파생 시장은 700조달러에 이른다. 20년 전 10조달러에서 70배 팽창했다. 세계 GDP(60조달러)의 10배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파생상품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금융에 대한 규제는 성공할 수 있을까? 

“금융업은 너무 비대해졌고, 영향력도 과도하게 커졌다. 갑작스러운 통제는 어려울 것이다. 더 큰 재앙이 오기 전까지는, 금융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기 전까지는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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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글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획기적인 기술 혁명이 나타나지 않는 한 세계 경제는 적어도 10년은 저성장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10년의 기간은 지난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부채'를 싣고 달려온 자본주의 경제라는 이름의 열차가 앞으로 서서히 부채의 짐을 털어버리기 위해 통과해야할 긴 터널이다. 

10년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시경제와 증시는 (늘 동행하지는 않겠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점차 수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식투자자는 앞으로 주식을 털어낼 기회를 잡아내는데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작년 여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증시 흐름(일정 범위 내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롤러코스트 장세)을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부담 없는 자금이라면 개인적으로 예상하는 마지막 버블(2015년)을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오랜 세월동안 금융 레버리지에 길들여지고 화폐 공급(양적 완화)이라는 몰핀에 취해 온 경제가 마약에서 깨어나는 고통스런 기간 동안 자본주의 경제는 건전성과 소득 균형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변혁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한 경제를 ‘균형경제’ 또는 ‘행복경제’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얼벗 이인형 님이 제시한 ‘협동경제’도 훌륭한 대안이라고 본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그 경제는 지구 생태환경을 중시하며, 작금의 자본주의 경제가 추구하는 과소비와 과잉생산을 지양하며, 천천히 가더라도 지속가능하며 균형있는 발전을 지향한다. 무한 경쟁 대신 협동을 지향하며, 글로벌 경제에서 로컬 경제로, 자본 중심에서 노동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세계 경제 지배자들과 보이지 않는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금융모피아들을 비롯한 경제 관료들, 주류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엘리트층, 그리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매일같이 ‘성장’을 외치며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으로 국민들 쥐어짜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쥐어짜는 대가로 주어지는 소득은 15년 간 정체되어 있고, 같은 기간 증가한 소비는 국민들의 ‘빚(가계 부채)’으로 충당되었다.(2012년 말 현재 가계부채 1000조원 육박). 성장할수록 국민(대중)을 가난하게 만드는 경제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수출 대기업은 사실상 중소 협력업체(하청업체)의 이익과 비정규직 임금 착취 기반의 ‘글로벌 경쟁력’을 토대로 벌어들인 수출 이익을 대부분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다(삼성전자 사내 유보금 40조원). 그 이익금은 협력업체와의 공유를 통해 경제 저변으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임직원이 독식하는 체제다.(주식의 50% 가량이 외국인 소유).

이익의 균형있는 분배를 통한 대중의 소득 증대는 자본주의 경제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이는 바둑의 정석과도 같다. 이를 도외시하는 경제 체제는 자체 모순으로 결국 종말을 맞이하거나, 대중을 길들여 매트릭스 안에 성공적으로 가두는 방법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둘 중 하나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배체제가 어느 길을 택할 지는 '대중의 각성' 수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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